반바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나면 날씨는 더욱 뜨거워 질 것이다. 그런 약 한달 가까이 지속되는 장마가 올것이고 장마 시즌이 끝나면 뜨거운 폭염에 사람들 옷차림은 가벼워 질 것이다. 지금이야 집에서 혹은 더운 여름 입는 평상복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고는 하지만 반바지라고 하면 일단은 무례한 옷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2000년대를 들어서며 패션의 다양화,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대중화되면서 남성복에서 빠질수 없는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도 반바지는 공식적인 , 중요한 자리에서 여전히 금기시 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더운 여름 긴 바지만 입어야 하는 남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것이다. 서울시에서도 더운 여름 반바지도 못입고 일하는 남성들의 고충을 이해했는지 쿨비즈라는 이름아래 반바지를 입도록 권장했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아시아권 국가 뿐만 아니라 서양이나 중동에서 특히 엄격하게 여겨지는데 이탈리아의 성당이나 중동권 모스크 사원에서는 절대 반바지를 입을 수 없고 긴 바지를 입어야 하며, 반바지 금지에 항의하며 여성 스커트를 입는 남학생들의 소식도 들려오기도 했다. 필자는 사칙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입장이 아닌 사람이라서 복장에 크게 구애받지 않지만 매번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있어 여름은 정말 힘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됬든 이번에 출시된 일본의 편집숍 에디피스와 나이키의 협업 반바지는 수륙양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성 소재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6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반바지 오른쪽에 위치한 빅 스우시의 경우 약간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런대로 스포티한 느낌이 강해보인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옆모습으로 본 모양을 형상화 한것이 바로 스우시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고인 스우시 로고의 탄생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35달러를 주며 나이키의 로고를 의뢰했다. 아디다스와는 전혀 다른 로고를 만들어야 하며 동적인 느낌을 강하게 느낄수 있는 로고. 그렇게 스우시 로고가 발탁이 된다. 로고가 만들어 진지 12년이 지났을 즈음 필 나이트는 로고를 만든 캐롤린에게 깜짝 파티를 열어주며 나이키 로고가 박힌 다이아몬드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2000년까지 나이키에서 근무하였고, 나이키가 베푼 호의에 백만장자 까지는 아니더라도 풍족하게 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고나 브랜드네임이 브랜드의 흥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나이키의 경우를 살펴보아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도쿄 패션 위크 특별 프로그램 "AT TOKYO" 참가를 기념하여 타카히로미야시타 더 솔로이스트(TAKAHIROMIYASHITA the SOLOIST)에서 잭 퍼셀의 스페셜 모델을 출시한다. 80년대 클래식한 실루엣을 재현하였다. 왼발에는 "WE WILL ALWAYS" 오른발에는 "LOVE YOU, KURT"의 메세지를 배치하여 지난해 탄생 50주년을 맞이한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을 추모한다. 커트코베인과 컨버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죽을때 까지 그는 컨버스를 신었고 여러 위치에서 컨버스를 애용했다. 음악 뿐만 아니라 그는 패션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더 솔로이스트로 활동중인 타카히로 미야시타가 전개했던 넘버나인의 2003년 컬렉션인 TOUCH ME I'M SICK ~ A NEW MORNING 은 커트 코베인에 영감을 받아 발표된 컬렉션이다. 그가 자주 사용한 아이템이 컬렉션을 통해 다수 소개되었는데 그가 애용했던 레오파드 패턴의 재킷과 독특한 프레임의 선글라스 다 떨어진 니트와 데님에 이르기 까지 그런지 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 2008년에도 컨버스에서는 커트 코베인을 위한 원스타와 잭 퍼셀을 출시하기도 했다. 일부로 더러운 느낌을 연출되었다. 수많은 스포츠 브랜드의 명작 모델들이 그러하듯 잭 퍼셀 또한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 제작되었다. 캐나다 출신의 배드민턴 선수였던 그는 30년대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으로 활약했고 45년 은퇴까지 한번도 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퍼셀이 활약하던 시기 협회가 생겼고 올림픽 종목에서도 배드민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아니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BF굿리지 사의 요청에 따라 배드민턴 신발 개발에 종사하게 되고 이것이 컨버스 잭 퍼셀의 원형이라고 한다. 2015에는 출시된지 80주년을 기념한 모델이 출시되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델이 잭 퍼셀이다. BF굿리지는 1935년 잭 퍼셀을 제작하고 나서 2년후인 1937년 PF FLYERS를 설립하였고 1950년 PF FLYERS에서 잭퍼셀을 관리하게되었다. 20년 넘는 시간동안 잭퍼셀을 담당했던 굿리치 사는 1972년 신발제조를 중단하였고 PF FLYERS 또한 컨버스로 인수 결국 잭 퍼셀의 담당은 컨버스로 넘어가게 된다. 88년간의 긴 여정이었다.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신발은 깊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유명인사들이 신어 유명해지기도 했고 좋은 가격에 품질 까지 좋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명작이고 베스트셀러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브랜드를 상징할만한 대표적인 모델들이 있는데 아디다스는 슈퍼스타 나이키는 에어맥스 푸마의 경우 올해로 50살이 된 스웨이드 클래식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1968년 트레이닝 신발로 탄생한 이래로 푸마가 가장 자랑하는 간판 모델이 된 스웨이드 클래식은 스포츠 전반에서 사랑받는 모델로 알려져 있다. 동년 개최된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육상 200m에서 시상식에서 흑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수상자인 토미 스미스가 손을 뻗었던 퍼포먼스에서 그가 신었던 신발이 바로 푸마의 스웨이드 클래식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모두 메달이 박탈되었고 오랫동안 핍박받게 된다. 이 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NBA 뉴욕 닉스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한 월트 프레이저의 애칭을 딴 클라이드 라은 이름으로 특별히 제작되기도 하였을 정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힙합 그룹이었던 비스티보이즈와 스케이터들이 애용하는 등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모델이 바로 스웨이드 클래식인 것이다. 80년대 후반 유럽에서 제작되었던 스웨이드 클래식은 대만으로 원산지를 옮겨 제작되었고 일본의 미타스니커즈를 통해 쪽빛, 인디고 컬러로 염색된 스웨이드 클래식이 출시되어 큰 사랑을 받는다. 그들은 올해 스웨이드 클래식의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MCM과 손잡고 복고풍의 트랙슈트와 두가지 컬러의 스웨이드 클래식을 선보인다. 90년대 힙합 패션을 담은 다큐인 <더 리믹스> 행사에서 래퍼 빅 대디 케인과 랩소디가 무대의상으로 트랙슈트와 스웨이드 클래식을 착용하고 등장하기도 했다. MCM의 상징인 모노그램은 힙합 패션의 대부 대퍼 댄이 제작하였고 상당부분 푸마의 스웨이드 클래식이 걸어온 길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자 MCM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지금은 우리나라 그룹에 의해 인수가 되었지만 원래는 독일 뮌헨에서 1976년 태어난 브랜드이다. 당시 제작되던 여행가방은 너무 조잡하고 퀄리티가 낮았고 MCM은 다양한 불만들을 수용해 그것을 보완한 여행가방을 출시하면서 이름을 얻기 시작한다. 특유의 월계수 로고와 다이아몬드 문양 등 MCM을 상징하는 문양은 브랜드 그자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모든 제품에는 고유 번호가 새겨져 있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수백년간 이어져온 독일의 기술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유행에 휩쓸리지않는 스타일을 선보이며 끊임없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공개된 협업 컬렉션의 출시일은 5월 24일. 호불호가 갈리는 화려한 트랙슈트는 넘어가더라도 그들이 내놓은 스웨이드 클래식의 모습은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면 의류만 파는 셀렉숍은 거의 없다.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아이템을 추가로 판매하는 것이 대세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다. 라이프 스타일 숍은 꾸준히 증가했고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멋진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 만큼이나 인도어. 그러니까 집에서의 생활도 패션의 일부분이라고 인식되어지는 것 같다. 이런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의 경우 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당시 프레드 시갈이라고 불리우는 라이프 스타일 숍이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헐리웃 스타들이 방문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6년 프레드 시갈의 바이어였던 론 허먼은 로스엔젤레스 멜로즈 애비뉴에 자신의 이름을 딴 편집숍인 론 허먼을 설립하였다. 창업부터 일관되게 캘리포니아 스타일 오브 라이프(California Style of Life)를 제안했고, 그가 셀렉한 수많은 브랜드는 유명한 연예인들과 패션 업계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현재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원래 론 허먼은 일본 진출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론 허먼의 디렉터를 담당하는 미네 코우키(三根弘毅)가 론 허먼을 오랜 설득 끝에 일본 진출 계약을 성사 시켰고 2009년 일본 진출을 시작으로 꾸준히 매장을 늘려나가는 중이다.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스타일과 전세계의 캘리포니아 스타일을 지향하거나 콘셉트 적인 부분에서 어울리는 브랜드가 꾸준히 협업을 전개하면서 인지도를 얻는 중이다. 이번에 전개되는 프랑스의 A.P.C와의 협업은 꽤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론 허먼의 센다가야 점을 중심으로 오사카, 교토, 요코하마의 론 허먼 스토어에 이르기 까지 이번주 토요일부터 다음주 일요일까지 팝업 스토어를 전개한다고 한다. 캐주얼 부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자랑하는 아페쎄와 론 허먼의 조합은 코치재킷을 시작으로 오늘 소개하는 버튼 다운 셔츠 그리고 치노팬츠, 와치캡 , 그들이 처음 세워져던 멜로즈 애비뉴의 이름을 딴 프린팅 티셔츠까지 출시된다. 3만엔 초반의 코치 재킷과 2만엔 초반의 버튼 다운 셔츠의 가격을 보면 아페쎄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우터 셔츠류와 비교해보아도 크게 가격차이는 나지 않는듯 하다. 개인적으로 의미없는 협업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진 최근의 흐름이 이젠 많이 지겨워진지 오래다. 사실 크게 접점이 없어 보이는 조합이라서 그런것도 있고 이런 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을때 크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뭐 론 허먼 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을 오랫동안 해왔고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기에 아페쎄 이 후 어떤 브랜드와 협업할지에 대해서는 궁금해진다. 






우리가 샌들 하나에 5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어떤 브랜드인지 또 누가 만들고 어떤 소재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한 시즌 가볍게 신고 버릴 요량이라면 싸구려 쪼리 하나 사서 막 신고 다녀도 되겠지만 가격이 비싸더라도 평생을 신을 생각이라면 꽤 높은 금액을 투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맞는 가격대의 상품들이 있고 그것을 소비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소비라는 것은 대체로 정답이 없다. 주머니 사정에 맞게 소비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답이라고 할수도 없다. 옷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갑사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 옷을 내가 소유하느냐 못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좋아하는 옷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50만원이 넘는 가죽 샌들을 구입하는 사람을 미친놈처럼 볼것이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지갑 사정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부러워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이 신발 50만원이야 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미친놈 생각이 있냐 없냐 라는 비난과 함께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샌들 하나에 50만원이나 하느냐는 관심을 얻게 된다. 물론 그러한 비난을 생각하며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옷에 미친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비난을,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 물론 비즈빔이라는 브랜드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가지고 있는 꽤 유명한 브랜드이다.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만큼 비싸고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어쩌면 50만원이 넘는 샌들을 출시할 수 있는 이우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브랜드의 정체성에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미국산 호윈 가죽을 사용하는 샌들은 수없이 많지만 50만원이 넘는 가격이 형성되있지는 않는다.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이름은 알려져 있지않지만 동일한 소재를 사용한 샌들을 구입할 것이다. 나라면 아무리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나온 샌들이라고 해도 50만원이 넘는다면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미친 소리 들을정도로 비싼 옷도 구입해보았지만 특정 브랜드, 특정 아이템에 한하여 구입하였던 것이고 여름에만 신을수 있는 플립 플랍 형태의 가죽 샌들에 50만원을 투자할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다. 소비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 그 차이가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하나 샌들이라고 이름붙여진 비즈빔의 샌들은 미국의 소재와 일본의 기술이 더해져 만들어진 융합의 결과이다 차분한 색상과 자연스러운 샌들의 형태 비즈빔의 매력을 모두 포함한 샌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전통을 버리지 않으면서 세계를 상대로 했다는 아주 미련스러운 고집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스텔라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어떠한 동물 제품도 활용하지 않는다. 이런 확고한 고집은 스텔라 매카트니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매력이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영국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 그리고 포토그래퍼였던 린다 매카트니의 딸로 197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다. 폴 스미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인 폴 매카트니의 후광 덕분에 그자리에 있을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15살 부터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견습생을 시작으로 꾸뛰르 컬렉션을 경험했고, 시빌로우에서 기술을 습득 하는 등, 이미 오랜 시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물론 아버지의 후광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대부부의 톱스타의 자제들이 부모의 명성과 부의 빌붙어 살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런 편견은 어찌보면 매카트니가 안고 가야하는 문제일수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 넘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녀가 1997년 라거펠트의 뒤를 이어 끌로에로 들어갔을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실력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첫번째 끌로에 컬렉션은 보기좋게 대성공을 거두었고, 끌로에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어찌보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이자 친환경운동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녀의 브랜드 또한 어떠한 동물 제품도 활용하고 판매하지 않는다. 미국 힐튼 가의 상속년 패리스 힐튼이 가장 싫어하는 브랜드로 스텔라 매카트니를 꼽은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조 가죽을 활용하는 그녀의 노력 덕분에 최근의 퍼프리 선언과 같은 운동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싼 소재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환경 보호와 더불어 쿨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브랜드는 에코 시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시즌마다 전개하는 아디다스와의 협업에서도 환경을 보호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해양 환경 보호 단체 팔리 포더 오션과 협업, 해양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출시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아디다스와의 협업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미적 감각과 역동성을 여성 의류에 새겼고, 아디다스가 이렇게 고급스러워질수 있구나 하는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도 충분히 이끌었다. 이번에도 아디다스와 함께 협업한 아이템들이 출시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 바로 아디다스의 역작 울트라 부스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RUN 울트라 부스트는 10km 전후의 장거리 단거리 러너들을 위해 제작된 제품으로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여 재활용한 소재로 제작된다고 밝혔다. 


 

명품 브랜드의 퍼프리 선언은 새로운 패션의 시작을 알렸다. 최근 H&M은 2020년까지 모헤어 소재의 사용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다. 동물 복지 정책으로 동물의 털이나 모피, 다운 가죽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앙골라 모직의 사용을 폐지 하기도 했다. 이번 동물 애호 단체 PETA와 협의 이 후, 향후 모든 제품에 모헤어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동물의 퍼나 가죽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난받을수는 없다. 물론 좋은 취지의 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말이다. H&M의 설립자 Erling Persson 은 1947년 여성의류업체 “Hennes”를 스웨덴 Vasteras에 세웠다. “Hennes”는 스웨덴어로 “그녀를 위해” 또는 “그녀의” 라는 뜻이다. 사업을 전개한지 20년정도 된 1968년 의류소매업자 Mauritz Widforss와 함께 회사명을 “Hennes & Mauritz”(H&M)으로 바꾸고 남성의류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최신 패션과 베이직한 아이템을 출시하며 전세계적인 인기를 이끌어 오던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은 꾸준히 자신들의 점포를 늘려가며 인지도를 늘렸다. 하지만 최근 인종차별과 관련된 논란과 엄청난 규모의 재고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회사의 이미지가 굉장히 안좋아진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옷을 만드는 아시아 국가의 의류노동자들에대한 처우도 문제가 되었다. SPA브랜드로서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해 그들은 2007년 로열 아카데미 패션쇼에서 COS(COLLECTION OF STYLES) 를 런칭 하였다. 저렴한 가격대의 H&M 제품보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높은 가격으로 구성된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이고 높은 기능성을 갖춘, 잘 만들어진 디자인을 추구하는 COS는 고전적인 의류의 디테일을 남기면서 현대적인 분위그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브랜드. 옷장에서 유행에 상관없이 사랑받는 아이템을 만들기를 지향한다. 전통적인 제조법과 첨단 기술을 융합한 스타일. 바로 COS가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멀하고 군더더기 없는 COS는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좋은 남성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7년 런던 1호점을 시작으로 독특하고 모던한 이미지로 전개되는 공간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나아가야할 길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2014년 10월 첫번째 매장을 오픈하였다. 완벽한 흰색 티셔츠, 정교한 골드 주얼리, 잘 재단된 린넨 드레스. 미국에서는 제이크루 같은 브랜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수많은 SPA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었던 우리나라는 유니클로의 대박을 필두로 갭과 자라 그리고 조프레시나 망고같은 브랜드가 우리나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진출했지만 크게 사랑받고 있지는 않아보인다. 캐나다의 조프레시는 이미 사업을 종료했고 망고 같은 경우에도 매장을 줄이는 등 우리나라 시장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COS의 성공은 놀랍다. 이미 명품브랜드가 즐비한 청담동 상권에 COS의 매장을 입점하였고 전세계 8번째이자 국내에서는 처음인 컨세션 매장을 처음 선보이기도 하였다. 2013년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주던 H&M이 조금씩 하락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자 COS라는 브랜드가 매우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시장 확보를 유지하고 있다. H&M의 화려한 디자인에 지친 고객들이 미니멀한 디자인의 COS에 눈돌리고 있는 것도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COS의 성공은 충분히 한국 진출을 노리는 해외 브랜드에게 꽤나 좋은 귀감이 되어줄거라고 생각된다. COS의 브라운 컬러 베이스 볼 캡은 군더더기 없는 COS의 이미지를 잘 말해준다. 




일본의 여름. 한국과 함께 온대몬순기후에 속하고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이다. 특히 여름은 온도가 높고 습하다. 일본의 기후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강수량이 많고 지역차가 크다. 우리나라보다 더 덥다. 일본 여름의 기온은 열대 수준이고 일중기온이 30도를 넘는건 기본이다. 또 일본에서는 야간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을 열대야라고 한다. 장마도 있다. 태풍도 많다. 장마는 기간이 일정하지 않으나 약 한달정도이고 이 장마가 끝나면 지옥같은 더위가 시작된다. 일본 열도의 평균 습도는 77.7%. 한국의 평균 습도가 69%라고 볼 떄 고온다습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한다. 한여름 세계에서 가장 고온다습한 아마존 지역은 도쿄의 여름보다 훨씬 견디기 쉽다. 여름 장마철 곰팡이도 자주 끼고 일본인들을 이걸 매우 귀찮게 여긴다고 한다. 지옥같은 더위가 끝나면 태풍이 차례로 열도를 방문한다. 이런 기후는 일본인들의 성격과 국민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습한 기후는 일상복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땀나는 여름 더운 옷을 입고 싶은 사람은 없다. 될 수 있으면 시원하고 땀에 젖어도 빨리 마르는 기능성 소재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무인양품의 여름을 위한 속건 티셔츠는 바로 일본의 여름을 위한 가장 적합한 티셔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가격과 좋은 품질을 위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소비자들의 고민이었다. 무인양품의 좋은 가격은 소비자들의 고민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무인양품은 1980년 시작된 일본의 종합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간단하게 정의내릴수 있겠다. 생산과정을 간소화하고 소재를 선택하는데 신경을 쓰고 쓸데없는 포장을 간소화 하는 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바이다. 국내 진출 당시에는 유니클로와 같이 SPA 브랜드로 광고 전략을 세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절대 SPA브랜드라고 보긴 힘들다. 90년대 초반 경제 불황에도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적인 상품 기획력과 좋은 가격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2000년대 약간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전세계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무인양품. 이름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그들은 노브랜드를 지향한다. 브랜드 각인은 제외하고 포장은 간소화 하며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으로 줄였고 조잡하고 촌스러운 공산품의 디자인이 아닌 모던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된 점도 무인양품이 인기를 끌게된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과 국내 무인양품의 가격차이는 조금있다. 아니 좀 비싼편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본에서 구입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고장이 나면 국내에서 수리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여러 단점은 있지만 꾸준히 무인양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충분한 정체성과 가격 디자인이 매력적이라는 뜻 아닐까 싶다. 

미국의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 그렇다면 영국은? 아마도 팔라스 스케이트보드가 아닐까? 얼마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의 협업 컬렉션을 출시하였고 그들의 18 여름 컬렉션의 전체 제품군을 공개했다. 이번 룩북은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가 자연을 배경삼아 촬영한 것으로서 작가 특유의 개성이 녹아있는 룩북이라고 평가받는다. 잠깐 유르겐 텔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1964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3대째 악기를 만들었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교육을 받기도 하였지만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교육을 중단하게 된다. 요양을 위해 사진 작가를 하던 삼촌이 있는 곳으로 가게되었다. 그곳에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된 유르겐 텔러는 뮌헨에 있는 사진 학교에서 공부하며 런던으로 건너가게 된다. 힘든 타지 생활로 자신이 아끼던 사진기를 팔 정도로 힘들었던 그는 패션 사진가 닉 나이트의 소개로 잡지 프리랜서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의 룩북에는 스케이터인 블론디 맥코이,루시 클라크가 출연하여 보다 신선한 비주얼이 완성되었다. 공개된 제품군은 모두 128점. 고어텍스를 활용한 윈드브레이커를 메인으로 아노락, 트랙수트 등을 비롯하여 오버 프린트 셔츠, 백팩, 모자, 타월 등 액세서리 라인도 굉장히 주목도가 높다. 특히 오늘 소개하는 오클리와의 협업 선글라스는 128점의 제품군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오클리는 말한다. 진정한 명품은 그 브랜드 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있어야 한다. 흉내 낼 수 없는 디자이너들의 예술혼이 담긴 제품만이 명품이라 불릴자격이 있다. 아무리 디자인과 색상이 아름다워도 편리함과 내구성이 떨어지면 결코 인정 받을수 없다. 1975년 짐 저나드에 의해 창립된 오클리는 영어권 국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다정다감한 이름인 오클리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때 출시된 M 프레임 선글라스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오클리의 선글라스로 이번 팔라스와의 협업 컬렉션에서도 선보이게 된다. 


1990년대 그들은 오클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위해 수많은 디자이너와 과학자들을 영입하였고 패션 선글라스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첨단의 선글라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90년대에 이르러 그들은 선글라스의 생산을 고집하지 않고 의류나 가방 시계 같은 악세사리류 아이템을 출시하며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스포츠 선글라스의 대명사가 된 M 프레임 선글라스는 현재 2번째 버전 모델이 출시되었고 유선형의 윤곽, 매끄러운 라인이 스포츠 선글라스의 이미지임을 잘 말해준다. 상황에 따라 렌즈를 교체할 수 있는 독특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으며 미끄러지지 않으며 땀이 날수록 미끄러지지 않는 코받침과 귀받침이 추가되어 있다. 멋진 선글라스가 팔라스와 만났다.  





미국에서 건너온 튼튼하고 저렴한 워크웨어 브랜드 디키즈. 미국 텍사스에서 1922년 창립되어 현재 100여개국에서 작업복으로 혹은 패션 브랜드로 인지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디키지의 본명은 "Williamson-Dickie Manufacturing Company" 디키즈는 브랜드의 창립자중 한사람인 디키의 이름을 땄다. 전통적인 팬츠라인인 874를 비롯하여 점퍼, 셔츠, 반바지 아이템 모두 디키즈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2012년 일본에서는 디키즈의 단독숍이 개점되었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전개 하는 중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디키즈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디키즈 874 팬츠는 디키즈의 초기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1923년 디키즈 874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KHAKI'가 생산을 시작했고 이 후 90년 동안 전세계 워크웨어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는다. 874가 곧 디키즈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작인 아이템이다. 특징을 말하자면 그 소재에 있다. 폴리에스테르 65% 면 35% 소재로 구성된 T/C 소재는 튼튼함을 기반으로 독특한 탄력감을 지닌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내구성 또한 우수하며 발수 가공 처리 되어 먼지에도 매우 강한 소재이다. 바지 중심에 있는 주름 또한 874 팬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서양인 핏으로 출시되는 바지인지라 사이즈 선택이 매우 중요하지만 디키즈의 워크 팬츠는 적절하게 입어서는 도저히 그 매력을 실현시킬수 없다. 약간은 펑퍼짐 하고 큼직한 핏에서 그 매력이 발산된다. 비싸봐야 6만원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디키즈의 874는 일본의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아시안 핏의 새로운 팬츠를 출시하기도 했다. 바로 WD874. 오리지널 874에 비해 밑위가 얕고 실루엣은 동일하지만 조금은 타이트한 사이즈로 제작되었다. 오리지널보다 좀 더 광택이 도는 고급 소재를 활용한다. 내구성과 기능성에는 변함이 없고 좀 더 드레시한 느낌으로 입을 수 있다. 물론 오리지널 보다 조금 더 비싸다. 





원래 874년 2차세계대전 중 미 육군의 유니폼으로 개발 된 후 현지 텍사스의 석유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복으로 다시 태어난다. 874팬츠의 소재는 3M사의 스카치가드(ScotchGard)원단으로 우수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1990년대 미국 스트리트 컬처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젊은 스케이트 보더들이 이 바지를 애용하면서 알려지게된다.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으로 수많은 헐리우드 배우와 연예인이 착용하였고 일본에서도 아메리칸 캐주얼 아이템으로 디키즈의 874가 주목받게 된다. 걸그룹 KARA는 MR라는 곡에서 오렌지 컬러의 디키즈 874 팬츠를 무대의상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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